"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오늘은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에서 발견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어요. '맞아, 정확히 그런 경험이 있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오늘의 영감을 준 책
한강의 「소년이 온다」 -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적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들여다본 소설입니다. 트라우마와 기억, 그리고 그것이 남긴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에요.
「소년이 온다」 책 보러가기모든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 치유된다는 말, 정말 맞을까요?
"시간이 지나면 모든 상처는 아문다"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하지만 한강 작가님의 말처럼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요.
저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어요. 대학 시절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사고 당시의 소리와 충격, 그리고 느꼈던 공포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해요. 비가 오는 날이면 그날의 빗소리가 떠오르고, 급정거하는 차 안에 있으면 순간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나죠. 다른 많은 기억들은 흐릿해졌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치 방금 일어난 것처럼 생생한 기억이 있다면, 그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트라우마일 수 있어요.
왜 어떤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고 더 선명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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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위험을 기억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위험했던 순간을 특별히 강하게 기억해요. 이건 진화적으로 아주 중요한 기능이었거든요. "이 열매를 먹으면 배가 아팠어" 같은 기억이 생존에 도움이 되니까요.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 메커니즘이 때로는 우리를 괴롭힌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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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기억을 강화시켜요
감정적으로 충격적이었던 순간일수록 더 강하게 기억에 남아요. 첫사랑의 얼굴이나 큰 실패의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나는 이유죠. 트라우마는 극단적인 공포, 무력감, 충격 같은 강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어서 더욱 지워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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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경험은 계속 떠올라요
건강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가 되어 과거로 정리돼요. 하지만 트라우마적 기억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현재형으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자꾸 플래시백처럼 돌아오는 거죠.
아물지 않는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법
저도 한동안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자동차만 타면 긴장하고, 비 오는 날이면 집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죠.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방법을 찾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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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을 인정하기
처음엔 그냥 잊으려고 애썼어요. '이제 그만 생각하자', '다른 사람들은 더 심한 일도 금방 잊던데'라고요. 하지만 억지로 밀어내려 할수록 더 강하게 돌아오더라고요. 어느 날 심리 상담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큰 도움이 됐어요. "그 기억을 부정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경험한 일부니까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제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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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만들기
트라우마를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대요. 저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반복해서 쓰다 보니 조금씩 그 사건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됐어요. '이건 끔찍했지만, 지나간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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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도움 구하기
혼자서 극복하기 어려운 기억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정말 좋은 방법이에요. EMDR이나 인지행동치료 같은 방법들이 트라우마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해요. 저도 심리 상담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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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과 함께 성장하기
완전히 잊는 게 아니라,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저는 그 경험 덕분에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고, 더 깊은 공감 능력도 갖게 됐어요.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상처를 통해 배운 것들이 있답니다.
다른 사람의 '아물지 않는 기억'을 대하는 방법
가끔은 주변 사람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건 벌써 오래 전 일인데 아직도 그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제 친한 친구는 어릴 때 겪은 학교 폭력 경험 때문에 아직도 단체 모임에서 불안해해요.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그건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됐어요. 친구에게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났다고 희미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요.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를 대할 때는 이렇게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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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하지 않기
"이제 그만 잊어버리고 앞으로 가자" 같은 말은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어요. 그 사람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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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하기
때로는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돼요.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기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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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어주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종종 고립감을 느껴요. 단순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기억이 우리를 만들지만, 우리를 규정하지는 않아요
한강 작가님의 말씀처럼 아물지 않는 기억은 분명 존재해요. 하지만 그 기억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죠. 우리는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 기억 그 자체는 아니에요.
트라우마는 마치 우리 몸에 생긴 흉터 같아요.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흉터가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죠. 오히려 그 흉터를 통해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아물지 않는 기억이 있다면,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하세요.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여러분의 모든 기억이—아픈 기억까지도—의미 있는 여정의 일부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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